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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실 3 - 방치된 태실...일제 침탈 상처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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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박철희
PCH@tbc.co.kr
2024년 02월 11일

[앵커]
반세기 전 사라졌던 세종 태실을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찾았다는 단독 뉴스를
최근 전해드렸는데요.

하지만 전국 곳곳에 산재한 조선왕실의 태실 상당수는 여전히 훼손된 채 방치돼 있습니다.

1920~30년대 일제가 조선의 명맥을 끊기 위해 훼손한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박철희 기잡니다.

[기자]
김천시 대항면 태봉산에 자리한
조선 제2대 왕 정종의 태실지입니다.

산 정상부 바닥에 태실을 구성했던 기둥과 난간을
비롯해 갖가지 석물이 어지러이 널려 있습니다.

태를 묻은 자리에 세웠던 중앙태석은
인근 직지사 마당에, 비석과 다른 석물들은
직지사 성보박물관 앞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정종의 태를 담았던 항아리와 출생 기록을 적은 태지석은 서울 고궁박물관에 있습니다.

[스탠딩]
"비단 이곳뿐 아니라 전국의 조선왕실 태실이 대부분 비슷한 상황입니다. 일제가 자행한 침탈 때문입니다."

일본 궁내성의 조선왕실 담당기구인 이왕직은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1920,30년대 전국의 조선왕실 태실 54곳에서 태항아리와 태지석을 파내
경기도 고양의 서삼릉으로 모았습니다.

[CG 시작]
태항아리와 태지석은 일장기의 태양을 상징하는 원형의 시멘트 관에 묻었고 그 위엔 날 일 자 모양 시멘트 뚜껑을 덮었습니다.

지상에는 비석을 줄줄이 세운뒤 날 일 자
모양으로 담장을 쌓고 신사를 닮은 철문도 만들었습니다. [CG 끝]

[심현용 / 한국태실연구소장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장)]
“일본이 우리 전통 문화를 가두는 개념이 되죠. (서삼릉이라는) 죽음의 공간에 묻어서 더 이상 이어나가지 말라, 발전하지 말라는 교묘한 하나의 민족말살 문화정책의 한 개념으로 활용한 것 같아요. ”

일제는 태실에서 태항아리와 태지석을 빼낸 뒤 부지를 민간에 불하합니다.

경남 사천의 세종 태실이 원래 자리인 큰태봉산
정상에서 산기슭으로 밀려난 것도 이 때문입니다.

[CG/T]
이웃한 사천 단종 태실지에는 아예 사천을 대표하는 친일파 최연국의 무덤이 들어섰습니다.

태실의 핵심인 중앙태석과 비석은 자리를 옮겨
친일파 무덤의 지석 역할을 하고 있고
봉분을 받친 둘레돌도 온통 태실 석물입니다.

[CG/T]
지금까지 파악된 전국의 조선왕조 태실은 모두 189곳, 이 가운데 왕과 왕비의 태실, 즉 돌난간과 바닥을 설치하고 화려한 비석을 세운 가봉태실은 29곳입니다.

하지만 일제의 만행 이후 대부분 훼손돼 방치됐고 민묘에 자리마저 내주면서 현재 원래의 터에 제대로
서 있는 가봉태실은 국가 지정 보물인 서산 명종 태실과 영천 인종 태실 등 7곳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상당수는 도굴 피해를 입었고 명당 자리로 소문나다 보니 몰래 시신을 묻는 경우도 잇따르면서
지난 2019년 예천의 폐비 윤씨 태실 발굴조사에서는 암장한 유골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심현용 / 한국태실연구소장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장)]
“일제강점기 때 너무 훼손이 심해서 원형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시 발굴을 하든지 해서 원형을 찾아가는 복원 작업도 해야 하고, 특히 전수조사가 잘 안 돼 있어요.”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조선왕조 태실,
광복 8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일제의 파괴가 부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TBC 박철흽니다.(영상취재 이상호, CG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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